Kwak Sang-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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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k Sang-hoon (Korean: 곽상훈; October 21, 1896 – January 19, 1980) was a South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and politician who served as the 1st to 5th National Assembly member and served as acting president of South Korea for 7 days. rdf:langString
곽상훈(郭尙勳, 1896년 10월 21일 ~ 1980년 1월 19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고위정치인이다. 본관은 현풍. 호는 삼연(三然). 3.1만세운동에 가담했다가 투옥된 이후, 신간회· 등 여러 단체에 가담해 활약하였다. 광복 이후 반탁 운동에 가담했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론에 지지를 보냈다. 제헌국회의원에 선출되고, 1949년 반민특위 위원으로 특위 검찰차장에 임명되어 활약하였으며 1955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여 민주당 신파의 지도자로 활동한다. 5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4,5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1955년 민주당 최고 위원이 되었으며, 1960년 6월 일시적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였다. 이어 제5대 국회의원으로 뽑히어 국회 의장이 되었으나 5·16 군사 정변으로 그만두고 곧 민주당을 탈당하였다. 5.16 직후 군사 정권이 주는 감투는 거절하고 야인으로 생활하였다. 그러나 이후 1972년 유신 체제에 참여하여 육영재단 이사장, 통일주체국민회의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하여 야당 동료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rdf:langString
郭尚勳(韓語:곽상훈,1896年10月21日-1980年1月19日)號三然,是韓國政治人物,第二共和國時期曾暫任代理總統。早年於就讀,之後前往仁川發展。 1948年代表仁川成為首屆國會議員。之後由第2屆至第5屆國會都擔任議員。1960年5月2日至1960年6月23日擔任韓國國會議長。1960年4月19日,韓國爆發,原總統李承晚落台並逃往夏威夷,並由外務部長官許政暫代總統權行。6月15日,國會通過《內閣責任制改憲案》期間,通過在審議新憲法期間,賦于國會議長郭尙勳暫時代行總統職務的權力,由6月17日開始,直至6月22日審議完畢,才交回原代總統許政繼續,並從政壇引退。因此,郭尚勳成為了韓國歷代任期最短的代總統。 1972年,郭尚勳回到政壇,並當選成為統一主體國民會議的成員。 1979年,郭尚勳於家中去世,韓國政府為其舉行社會葬,將其安葬於國立首爾顯忠院。 rdf:langString
rdf:langString Kwak Sang-hoon
rdf:langString 곽상훈
rdf:langString 郭尚勲
rdf:langString 郭尚勳
rdf:langString Samyeon Kwak
rdf:langString Samyeon Kwak
rdf:langString Seoul,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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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f:langString 삼연 곽상훈
rdf:langString 곽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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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f:langString Kwak Sang-hoon (Korean: 곽상훈; October 21, 1896 – January 19, 1980) was a South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and politician who served as the 1st to 5th National Assembly member and served as acting president of South Korea for 7 days.
rdf:langString 곽상훈(郭尙勳, 1896년 10월 21일 ~ 1980년 1월 19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고위정치인이다. 본관은 현풍. 호는 삼연(三然). 3.1만세운동에 가담했다가 투옥된 이후, 신간회· 등 여러 단체에 가담해 활약하였다. 광복 이후 반탁 운동에 가담했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론에 지지를 보냈다. 제헌국회의원에 선출되고, 1949년 반민특위 위원으로 특위 검찰차장에 임명되어 활약하였으며 1955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여 민주당 신파의 지도자로 활동한다. 5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4,5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1955년 민주당 최고 위원이 되었으며, 1960년 6월 일시적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였다. 이어 제5대 국회의원으로 뽑히어 국회 의장이 되었으나 5·16 군사 정변으로 그만두고 곧 민주당을 탈당하였다. 5.16 직후 군사 정권이 주는 감투는 거절하고 야인으로 생활하였다. 그러나 이후 1972년 유신 체제에 참여하여 육영재단 이사장, 통일주체국민회의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하여 야당 동료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rdf:langString 郭尚勳(韓語:곽상훈,1896年10月21日-1980年1月19日)號三然,是韓國政治人物,第二共和國時期曾暫任代理總統。早年於就讀,之後前往仁川發展。 1948年代表仁川成為首屆國會議員。之後由第2屆至第5屆國會都擔任議員。1960年5月2日至1960年6月23日擔任韓國國會議長。1960年4月19日,韓國爆發,原總統李承晚落台並逃往夏威夷,並由外務部長官許政暫代總統權行。6月15日,國會通過《內閣責任制改憲案》期間,通過在審議新憲法期間,賦于國會議長郭尙勳暫時代行總統職務的權力,由6月17日開始,直至6月22日審議完畢,才交回原代總統許政繼續,並從政壇引退。因此,郭尚勳成為了韓國歷代任期最短的代總統。 1972年,郭尚勳回到政壇,並當選成為統一主體國民會議的成員。 1979年,郭尚勳於家中去世,韓國政府為其舉行社會葬,將其安葬於國立首爾顯忠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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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f:langString 삼연 곽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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