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g Tong (philosopher)
http://dbpedia.org/resource/Wang_Tong_(philosopher) an entity of type: Thing
Wang Tong (王通) (584-617), style name Zhongyan (仲淹), posthumous name Master Wenzhong (文中子) was a Sui Dynasty official, writer and Confucian philoso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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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통(王通, 582 ~ 616)은 수나라의 유학자이다. 자는 중엄(仲淹)이고 별호인 문중자(文中子)로도 불릴 때가 많다. 왕통은 유가사상의 계승을 필생사업으로 생각하였다. 그의 근본사상은 중용(中庸)에 근거하였다. 그의 교육에 관한 학설은 그의 저작인 《중설》(中說)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유가의 교육학설에 따라 덕례(德禮)교육을 주장하였다. 덕례의 내용은 (仁義)이다. 그에 의하면 인의는 교육의 근본이고, 교육은 인의를 실천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난세를 만나 인의를 실천하기 어려우면 수신(修身)·제가(齊家)만이라도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는 당시의 사람들이 농공(農工)을 천시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 자신이 몸소 농사지으며 생활을 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기의 직분에 만족하고 직책을 충실히 완수할 것을 주장하여, 학문의 목적이 자기완성에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교육은 자기 본성을 바로잡는 ‘정기심(正其心)’에서 출발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관찰하여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일반 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교육의 교재로서 《춘추》, 예(禮), 악(樂), 시(詩), 서(書), 역(易)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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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 通(おう とう、584年(開皇4年)- 618年(武徳元年))は、中国・隋代の儒学者。字は仲淹(ちゅうえん)。号は文中子(ぶんちゅうし)。絳州竜門県(現在の山西省運城市河津市)の出身。 名族である太原王氏の傍系出身である。父の王隆は国子博士となり、開皇初年文帝に「興衰要論」7篇を奏した。兄は王度。弟は王凝・王績(東皐子)・王竫。孫には初唐の詩人王勃がいる。 18歳の時に秀才科に及第したにもかかわらず、官には就かなかった。603年(仁寿3年)に文帝に対して「太平十二策」を上呈したが、納れられなかったため、郷里である竜門県に戻り、著述に専心した。その許には一千人単位の門弟が集まった。その中からは唐朝建国の功臣たちが多数輩出した。その著書『文中子中説』は弟子たちとの対話を集録したものであり、北宋の阮逸が注を付した。ただ、この書の内容や真偽に関しては、諸説紛紛たるさまを呈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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Ван Тун (кит. 王通, пиньинь Wáng Tóng, 584—617) — китайский философ и политический мыслитель, один из крупнейших представителей конфуцианства в период от Ян Сюна (I в. до н. э. — I в. н. э.) до Хань Юя (VIII—IX вв.). Во времена идейного доминирования буддизма Ван Тун сыграл большую роль в сохранении конфуцианских традиций. Он развивал теорию о единстве «трех учений» (кит. 三教 сань цзяо) — конфуцианства, буддизма и даосизма. Ван Туна называют ранним провозвестником идеологии неоконфуцианств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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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通(584年-617年),字仲淹,谥号文中子,外號王孔子,河东郡龙门县(今山西省万荣县)人,隋朝大儒。著作等身,三十三歲離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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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通 (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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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통 (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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Ван Тун (филосо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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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g Tong (philoso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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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通 (隋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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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g Tong (王通) (584-617), style name Zhongyan (仲淹), posthumous name Master Wenzhong (文中子) was a Sui Dynasty official, writer and Confucian philoso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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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통(王通, 582 ~ 616)은 수나라의 유학자이다. 자는 중엄(仲淹)이고 별호인 문중자(文中子)로도 불릴 때가 많다. 왕통은 유가사상의 계승을 필생사업으로 생각하였다. 그의 근본사상은 중용(中庸)에 근거하였다. 그의 교육에 관한 학설은 그의 저작인 《중설》(中說)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유가의 교육학설에 따라 덕례(德禮)교육을 주장하였다. 덕례의 내용은 (仁義)이다. 그에 의하면 인의는 교육의 근본이고, 교육은 인의를 실천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난세를 만나 인의를 실천하기 어려우면 수신(修身)·제가(齊家)만이라도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는 당시의 사람들이 농공(農工)을 천시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 자신이 몸소 농사지으며 생활을 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기의 직분에 만족하고 직책을 충실히 완수할 것을 주장하여, 학문의 목적이 자기완성에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교육은 자기 본성을 바로잡는 ‘정기심(正其心)’에서 출발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관찰하여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일반 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교육의 교재로서 《춘추》, 예(禮), 악(樂), 시(詩), 서(書), 역(易)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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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 通(おう とう、584年(開皇4年)- 618年(武徳元年))は、中国・隋代の儒学者。字は仲淹(ちゅうえん)。号は文中子(ぶんちゅうし)。絳州竜門県(現在の山西省運城市河津市)の出身。 名族である太原王氏の傍系出身である。父の王隆は国子博士となり、開皇初年文帝に「興衰要論」7篇を奏した。兄は王度。弟は王凝・王績(東皐子)・王竫。孫には初唐の詩人王勃がいる。 18歳の時に秀才科に及第したにもかかわらず、官には就かなかった。603年(仁寿3年)に文帝に対して「太平十二策」を上呈したが、納れられなかったため、郷里である竜門県に戻り、著述に専心した。その許には一千人単位の門弟が集まった。その中からは唐朝建国の功臣たちが多数輩出した。その著書『文中子中説』は弟子たちとの対話を集録したものであり、北宋の阮逸が注を付した。ただ、この書の内容や真偽に関しては、諸説紛紛たるさまを呈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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Ван Тун (кит. 王通, пиньинь Wáng Tóng, 584—617) — китайский философ и политический мыслитель, один из крупнейших представителей конфуцианства в период от Ян Сюна (I в. до н. э. — I в. н. э.) до Хань Юя (VIII—IX вв.). Во времена идейного доминирования буддизма Ван Тун сыграл большую роль в сохранении конфуцианских традиций. Он развивал теорию о единстве «трех учений» (кит. 三教 сань цзяо) — конфуцианства, буддизма и даосизма. Ван Туна называют ранним провозвестником идеологии неоконфуцианств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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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通(584年-617年),字仲淹,谥号文中子,外號王孔子,河东郡龙门县(今山西省万荣县)人,隋朝大儒。著作等身,三十三歲離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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