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Jin-woo (journ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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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Jin-woo (Korean: 송진우, hanja: 宋鎭禹, May 8, 1889 - December 30, 1945) was a Korean journalist, politician, independence activist, and social activist. His nickname was Goha (고하, 古下). He was the 3rd, 6th and 8th CEO of The Dong-a Ilbo and he was the founder and first head of the Korea Democratic Party (한국 민주당) in 1945. He was killed by Han Hyun-woo, a member of Baikuisa, a South Korean terrorist group. rdf:langString
宋 鎮禹(そう ちんう、ソン・ジヌ、1890年5月8日 - 1945年12月30日)は、朝鮮の独立運動家、政治家。本貫は。号は「古下」(コハ、고하)。 rdf:langString
宋鎮禹(韓語:송진우,1889年5月8日-1945年12月30日),號古下,兒名玉胤(옥윤),是韓國的獨立運動家、教育家、評論家及政治人物。他也是韓國民主黨的首任領袖,韓國三大報紙之一的東亞日報倡立人物之一。 rdf:langString
( 고하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고하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송진우(宋鎭禹, 1890년 6월 11일 (음력 5월 8일) ~ 1945년 12월 30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며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에 언론인, 교육자, 사상가,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신평이며 전라남도 담양군 고지면 손곡리 출신이다. 아호는 고하(古下)이다.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의 초대 당수였으며,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한국민주당의 초대 수석총무로 그의 한국민주당은 전통적 야당의 원조가 되었다. 의병장 기삼연(奇參衍), 김직부(金直夫)의 문인이다. rdf:langString
rdf:langString 宋鎮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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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f:langString Song Jin-woo (Korean: 송진우, hanja: 宋鎭禹, May 8, 1889 - December 30, 1945) was a Korean journalist, politician, independence activist, and social activist. His nickname was Goha (고하, 古下). He was the 3rd, 6th and 8th CEO of The Dong-a Ilbo and he was the founder and first head of the Korea Democratic Party (한국 민주당) in 1945. He was killed by Han Hyun-woo, a member of Baikuisa, a South Korean terrorist group.
rdf:langString 宋 鎮禹(そう ちんう、ソン・ジヌ、1890年5月8日 - 1945年12月30日)は、朝鮮の独立運動家、政治家。本貫は。号は「古下」(コハ、고하)。
rdf:langString ( 고하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고하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송진우(宋鎭禹, 1890년 6월 11일 (음력 5월 8일) ~ 1945년 12월 30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며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에 언론인, 교육자, 사상가,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신평이며 전라남도 담양군 고지면 손곡리 출신이다. 아호는 고하(古下)이다.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의 초대 당수였으며,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일본 유학 후 귀국, 김성수와 함께 중앙학교를 인수하여 교감에 취임했다가 1919년 2월 교장이 됐다. 정의론과 이상주의에 입각하여,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되어 1919년 3.1만세 운동을 주동한 민족대표 48인의 하나로 체포되었다가 복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1년 반 동안의 미결수 구류를 치르고 풀려났고, 이후 현실주의자로 변신한다. 1920년에는 학교설립 모금운동을 하다가 감시하던 경찰에게 붙잡히기도 했다. 그 뒤 김성수 등과 동아일보를 창립, 동아일보 사장, 주필, 고문 등을 역임하며 언론활동에 종사하였고, 실력 양성이 민족의 독립을 가져온다는 신념하에 물산장려운동, 운동 등에 참여, 브나로드 운동 등을 지원하였으며, 태평양 전쟁 전후에는 병을 핑계로 창씨개명과 임전 협력을 거부하다가 1945년 8월 광복을 맞았다. 광복 직전 조선총독부로부터 정권인수를 제의받았으나 거절하였고, 광복 직후 여운형으로부터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를 요청 받았으나 거절했다. 이후 여운형, 안재홍, 박헌영 등의 건국준비위원회에 대항하여 국민대회준비위원회를 조직, 임시정부 법통론을 주장하며 참여를 거부하였다. 9월 16일 한국민주당이 창당되자 한민당 초대 수석총무 (당수)에 추대되었으며, 45년 12월 1일 복간된 동아일보의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고하는 해방 직후 가장 강력한 이 두 기관의 대표로서 해방정국을 이끌면서 민주국가 건국 노력에 앞장섰다. 그러나 1945년 12월 27일의 모스크바 3상 회의 신탁통치 찬반 문제를 놓고 신중한 반탁론의 입장을 펼쳤다가 찬탁론자로 몰려 12월 30일 새벽 6시경 원서동 자택에서 한현우 등 6인의 총격을 받고 피살됐다. 한국민주당의 초대 수석총무로 그의 한국민주당은 전통적 야당의 원조가 되었다. 의병장 기삼연(奇參衍), 김직부(金直夫)의 문인이다.
rdf:langString 宋鎮禹(韓語:송진우,1889年5月8日-1945年12月30日),號古下,兒名玉胤(옥윤),是韓國的獨立運動家、教育家、評論家及政治人物。他也是韓國民主黨的首任領袖,韓國三大報紙之一的東亞日報倡立人物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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