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ng 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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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渾(1535年6月25日-1598年6月6日),字浩原,號牛溪,默庵,諡號文簡。 本貫昌寧成氏,韓國李氏朝鮮中期的文臣和性理學者,作家,詩人。他跟李珥,鄭澈,宋翼弼等人皆是西人黨的黨首。李珥的同門。趙光祖的弟子白仁傑的門人。 rdf:langString
Seong Hon (1535 – 1598) was a Korean philosopher, poet, and politician during the Joseon Dynasty. He was a Neo-Confucianist scholar who was a close friend of the scholar Yi I (Yulgok) and an older contemporary of Yi Hwang (Toegye), leader of the country's "western faction" (seoin 서인, 西人) of the period. rdf:langString
( ‘성혼’(成婚)은 결혼이 성립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성혼(成渾, 1535년 6월 25일 ~ 1598년 6월 6일)은 조선 좌찬성 직책을 지낸 조선 중기의 문신, 작가, 시인이며 성리학자, 철학자, 정치인이다. 자(字)는 호원(浩原), 호는 우계(牛溪), 또는 묵암(默庵). 시호는 문간(文簡). 본관은 창녕. 성수침의 아들이자 문하에서 수학하다 휴암 백인걸 문하에서 배웠다. 이때 이이를 만나 평생 친구로 지냈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거듭 사퇴하였으나 이이의 권고로 출사했고, 이이 사후에 출사하여 의정부좌찬성에 이르렀다.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서인 영수로 진사시에 합격한 후 복시(覆試)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할 뜻을 세웠다. 선조 때 여러 관직에 제수되고도 나가지 않았으나, 이이의 거듭된 추천으로 출사했다. 이런 연유로 동인들로부터 서인으로 지목되어 공격을 받았다. 심의겸이 몰락한 뒤 서인을 지도하였다. 그 뒤 동인과 서인의 갈등을 중재하려 노력했으나 실패하였고,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당시 최영경, 정개청을 구원하려다가 실패하면서 역으로 동인들로부터 그가 최영경, 정개청 등을 죽게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rdf:langSt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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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f:langString Seong Hon (1535 – 1598) was a Korean philosopher, poet, and politician during the Joseon Dynasty. He was a Neo-Confucianist scholar who was a close friend of the scholar Yi I (Yulgok) and an older contemporary of Yi Hwang (Toegye), leader of the country's "western faction" (seoin 서인, 西人) of the period. Seong Hon is often referred to by his stylized name of Ugye ("bull valley") and Mugam ("black stone"). He gained eminence not only as a scholar but as a revered politician and reformer, attaining the position of Fourth State Councillor/Vice Prime Minister (Jwachanseong 左贊成) in the Joseon State Council (uijeongbu).
rdf:langString ( ‘성혼’(成婚)은 결혼이 성립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성혼(成渾, 1535년 6월 25일 ~ 1598년 6월 6일)은 조선 좌찬성 직책을 지낸 조선 중기의 문신, 작가, 시인이며 성리학자, 철학자, 정치인이다. 자(字)는 호원(浩原), 호는 우계(牛溪), 또는 묵암(默庵). 시호는 문간(文簡). 본관은 창녕. 성수침의 아들이자 문하에서 수학하다 휴암 백인걸 문하에서 배웠다. 이때 이이를 만나 평생 친구로 지냈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거듭 사퇴하였으나 이이의 권고로 출사했고, 이이 사후에 출사하여 의정부좌찬성에 이르렀다.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서인 영수로 진사시에 합격한 후 복시(覆試)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할 뜻을 세웠다. 선조 때 여러 관직에 제수되고도 나가지 않았으나, 이이의 거듭된 추천으로 출사했다. 이런 연유로 동인들로부터 서인으로 지목되어 공격을 받았다. 심의겸이 몰락한 뒤 서인을 지도하였다. 그 뒤 동인과 서인의 갈등을 중재하려 노력했으나 실패하였고,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당시 최영경, 정개청을 구원하려다가 실패하면서 역으로 동인들로부터 그가 최영경, 정개청 등을 죽게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세자인 광해군의 부름을 받아 그를 돕고 평양에 올라가 선조를 만났으나, 왜란 초 선조가 피난할 때 행차하는 길목에 살면서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동인 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이후 죽은 후에까지 동인들과 남인들의 공격을 받았다. 1593년 세자 광해군 분조의 부름을 받고 우참찬에 올랐고, 좌참찬, 좌찬성을 역임했다. 1594년(선조 24) 의주파천에서 환도한 후 영의정 유성룡 등과 함께 일본과 화의를 체결할 것을 주장했다가 동인의 맹공격을 받고, 선조의 눈밖에 났다. 윤선거의 외할아버지이자 윤증의 진외증조부이다. 이황의 이기이원론과 이이의 이기일원론의 절충을 취하였으며, 학문 연구를 하다 생애 후반에는 관직에 투신하여 찬성(讚成)에 이르렀고, 서인의 당수로 활동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해 세자를 모시었고, 1594년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에 임명되어 취임했다. 그해에 좌찬성으로 승진했고 비변사 회의에 참여하여 시무 12조를 올렸다. 1594년 좌참찬으로 있을 때 영의정 유성룡(柳成龍)과 함께 주화론을 주장한 일이 문제되어 매국노로 낙인찍혀 정계에서 은퇴한다. 율곡 이이, 송강 정철, 구봉 송익필과 친분이 깊었다. 조헌, 김덕령, 정철, 윤황, 황신, 이귀, 김자점 등이 그의 문하생이다. 아버지 성수침과 휴암 백인걸의 문인.
rdf:langString 成渾(1535年6月25日-1598年6月6日),字浩原,號牛溪,默庵,諡號文簡。 本貫昌寧成氏,韓國李氏朝鮮中期的文臣和性理學者,作家,詩人。他跟李珥,鄭澈,宋翼弼等人皆是西人黨的黨首。李珥的同門。趙光祖的弟子白仁傑的門人。
rdf:langString 우계, 묵암
rdf:langString 호원
rdf:langString 문간
rdf:langString 牛溪, 默庵
rdf:langString 浩原
rdf:langString 文簡
rdf:langString Ugye, Mukam
rdf:langString Howŏn
rdf:langString Mun'gan
rdf:langString Ugye, Mugam
rdf:langString H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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