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u Hanhong

http://dbpedia.org/resource/Liu_Hanhong an entity of type: Person

Liu Hanhong (劉漢宏) (died 887?) was a warlord of the Chinese dynasty Tang Dynasty who initially was a rebel against Tang but later accepted Tang titles and controlled Yisheng Circuit (義勝, headquartered in modern Shaoxing, Zhejiang). Eventually, he was defeated and captured by Qian Liu, and delivered to Qian's superior Dong Chang and executed. rdf:langString
유한굉(劉漢宏, Liu Hanhong, ? ~ 887년?)은 중국 당나라 말기에 활약했던 군벌로, 당초에는 당나라에 반기를 들었으나, 후에 당나라의 관직을 받고 의승군 절도사(義勝軍節度使, 본거지는 지금의 저장성 사오싱 시)로서 절강 동부 일대를 지배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절강 서부 일대의 정복을 시도하였으나, 그때마다 전류와의 전투에서 패배를 거듭하였다. 최후에는 전류에게 패배하여 사로잡혀 전류의 상사였던 동창에게로 압송되어 처형되었다. rdf:langString
劉漢宏(?-886年),唐末山东兖州人。 早年是地痞无赖,后來擔任兖州小吏,唐僖宗时奉命討伐王仙芝,刘汉宏反投奔王仙芝。乾符末年攻略江陵,都统王铎以大将讨之,刘汉宏投降,被任为宿州刺史。王铎让刘汉宏留守江陵,刘汉宏却烧城而去。王铎让他接任浙东观察使。 黃巢入長安,唐僖宗亡命蜀中,劉漢宏向僖宗进贡,唐僖宗特旨以漢宏为义胜军节度使。官至浙東觀察使。刘汉宏嘗自言:“天下方乱,卯金刀非吾尚谁哉?”中和二年(882年),劉漢宏下令其弟屯兵于西陵(今萧山西北),攻击杭州刺史董昌,董昌命钱镠领兵三千,两渡钱江杀入大营,大挫汉宏,钱镠又在诸暨、萧山大败刘汉宏。中和三年(883年),劉漢宏率军屯于黄岭,再攻董昌,又被擊敗。中和四年,唐僖宗派宦官为杭越通和使,要董昌和劉漢宏罢兵和解。劉漢宏仍不斷騷擾浙西,光启二年(886年),董昌下令錢鏐直捣越州(今浙江绍兴),击破汉宏的大将,進駐丰山。刘汉宏率殘眾六百人走保台州(今浙江台州),錢鏐斩其母、妻等家眷,台州守将杜雄知不敵,生擒刘汉宏献于董昌。董昌下令將其斩首。刘汉宏说:“自古以来有不亡之国吗?”叱责刽子手:“我是节度使,不是庸人可以斩的。我曾梦见有人持金杀我,必是钱镠。”于是董昌命钱镠斩杀之。 rdf:langSt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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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f:langString Liu Hanhong (劉漢宏) (died 887?) was a warlord of the Chinese dynasty Tang Dynasty who initially was a rebel against Tang but later accepted Tang titles and controlled Yisheng Circuit (義勝, headquartered in modern Shaoxing, Zhejiang). Eventually, he was defeated and captured by Qian Liu, and delivered to Qian's superior Dong Chang and executed.
rdf:langString 유한굉(劉漢宏, Liu Hanhong, ? ~ 887년?)은 중국 당나라 말기에 활약했던 군벌로, 당초에는 당나라에 반기를 들었으나, 후에 당나라의 관직을 받고 의승군 절도사(義勝軍節度使, 본거지는 지금의 저장성 사오싱 시)로서 절강 동부 일대를 지배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절강 서부 일대의 정복을 시도하였으나, 그때마다 전류와의 전투에서 패배를 거듭하였다. 최후에는 전류에게 패배하여 사로잡혀 전류의 상사였던 동창에게로 압송되어 처형되었다.
rdf:langString 劉漢宏(?-886年),唐末山东兖州人。 早年是地痞无赖,后來擔任兖州小吏,唐僖宗时奉命討伐王仙芝,刘汉宏反投奔王仙芝。乾符末年攻略江陵,都统王铎以大将讨之,刘汉宏投降,被任为宿州刺史。王铎让刘汉宏留守江陵,刘汉宏却烧城而去。王铎让他接任浙东观察使。 黃巢入長安,唐僖宗亡命蜀中,劉漢宏向僖宗进贡,唐僖宗特旨以漢宏为义胜军节度使。官至浙東觀察使。刘汉宏嘗自言:“天下方乱,卯金刀非吾尚谁哉?”中和二年(882年),劉漢宏下令其弟屯兵于西陵(今萧山西北),攻击杭州刺史董昌,董昌命钱镠领兵三千,两渡钱江杀入大营,大挫汉宏,钱镠又在诸暨、萧山大败刘汉宏。中和三年(883年),劉漢宏率军屯于黄岭,再攻董昌,又被擊敗。中和四年,唐僖宗派宦官为杭越通和使,要董昌和劉漢宏罢兵和解。劉漢宏仍不斷騷擾浙西,光启二年(886年),董昌下令錢鏐直捣越州(今浙江绍兴),击破汉宏的大将,進駐丰山。刘汉宏率殘眾六百人走保台州(今浙江台州),錢鏐斩其母、妻等家眷,台州守将杜雄知不敵,生擒刘汉宏献于董昌。董昌下令將其斩首。刘汉宏说:“自古以来有不亡之国吗?”叱责刽子手:“我是节度使,不是庸人可以斩的。我曾梦见有人持金杀我,必是钱镠。”于是董昌命钱镠斩杀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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