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n Jae-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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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n Jae-hong (Korean: 안재홍; Hanja: 安在鴻, December 31, 1891 – March 1, 1965) was a Korean activist, politician, and journalist who participated in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rdf:langString
An Chae-hong (안재홍) est un homme politique et un journaliste coréen, militant pour l'indépendance de son pays lors de l'occupation japonaise de celui-ci. Il est né le 30 novembre 1891 et est mort le 1er mars 1965. rdf:langString
安 在鴻(アン・ジェホン、1892年11月30日 - 1965年3月1日)は、朝鮮独立運動家、政治家。号は「民世」(ミンセ、민세)。本貫は。 rdf:langString
安在鸿(朝鮮語:안재홍/安在鴻;1892年11月30日-1965年3月1日),号景陸、民世、又軒,韩国独立运动家、政治家。 rdf:langString
(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안재홍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안재홍(安在鴻, 1891년 12월 30일 (음력 11월 30일) ~ 1965년 3월 1일)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통일운동가, 정치가이며 언론인, 역사가, 언어학자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 건국준비위원회 부 위원장과 남조선과도정부의 민정장관이자 정부 수반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시대일보 이사, 조선일보 사장, 신간회 활동 주역이었으며, 조선어학회, 흥업구락부 등에서도 활동했다. 일제강점기 내내 사회단체와 독립운동, 칼럼 기고 활동 외에도 사학자로서 고적지 답사, 어문 연구 등의 활동을 하기도 했다. 수필가로서는 고원의 밤 등의 수필, 기행문을 남겼다. rdf:langSt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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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f:langString Ahn Jae-hong (Korean: 안재홍; Hanja: 安在鴻, December 31, 1891 – March 1, 1965) was a Korean activist, politician, and journalist who participated in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rdf:langString An Chae-hong (안재홍) est un homme politique et un journaliste coréen, militant pour l'indépendance de son pays lors de l'occupation japonaise de celui-ci. Il est né le 30 novembre 1891 et est mort le 1er mars 1965.
rdf:langString 安 在鴻(アン・ジェホン、1892年11月30日 - 1965年3月1日)は、朝鮮独立運動家、政治家。号は「民世」(ミンセ、민세)。本貫は。
rdf:langString (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안재홍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안재홍(安在鴻, 1891년 12월 30일 (음력 11월 30일) ~ 1965년 3월 1일)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통일운동가, 정치가이며 언론인, 역사가, 언어학자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 건국준비위원회 부 위원장과 남조선과도정부의 민정장관이자 정부 수반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시대일보 이사, 조선일보 사장, 신간회 활동 주역이었으며, 조선어학회, 흥업구락부 등에서도 활동했다. 일제강점기 내내 사회단체와 독립운동, 칼럼 기고 활동 외에도 사학자로서 고적지 답사, 어문 연구 등의 활동을 하기도 했다. 수필가로서는 고원의 밤 등의 수필, 기행문을 남겼다. 1919년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고 이어 대한청년외교단을 조직하여 상하이 임시정부와 연락하다가 체포되어 3년간 투옥당했다. 1923년 시대일보 이사 겸 논설위원, 조선일보 사장 겸 주필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조만식, 송진우, 이규완 등과 함께 물산장려회에도 참여하였다. 1925년에는 신간회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8개월간 복역하였다. 1936년 다시 임정과 연락을 취하다가 적발되어 2년간 투옥당했고,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년간 투옥되었다. 해방정국에서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과 한성일보사 사장 등을 맡았으며, 1946년에는 우사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좌우합작운동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1946년 8월 미군정청의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1947년 2월 5일에는 남조선과도정부의 정부수반 겸 민정장관으로 임명되어 1948년 8월 15일까지 근무했다. 남북협상에는 소극적이었으나 남북협상 실패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인정, 대한민국 국기시정위원회 위원 등으로 참여했다. 1950년 5월의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나, 6월 25일 한국전쟁 때 조선인민군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납북되었다. 아호는 민세(民世), 우헌(又軒)이고, 자는 경륙(景陸), 재홍(在鴻)이다. 경기도 수원군(지금의 평택시) 출신. 해방 후에는 중도우파의 지도급 정치가로서 기존의 지배계급 위주의 이론을 부정하고, 자신이 정립한 신민족주의론과 신민주주의론에 입각하여 우파를 중심으로 좌파까지 망라하자는 이른바 민공협동론을 주창하였다. 그러나 미소간 냉전체제가 고착되어가는 국제정세 하에서 중도파들의 민공협동론은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편이었다. 이에 안재홍은 이승만과 유엔과 미국이 제안, 지지하는 남한 단정수립론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이상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로 변신하였다는 평이 있다.
rdf:langString 安在鸿(朝鮮語:안재홍/安在鴻;1892年11月30日-1965年3月1日),号景陸、民世、又軒,韩国独立运动家、政治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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